늘기만 하던 난민 수, 증가세 주춤했지만…
대한민국 인구의 2.4배, 1억 2,200만 명이 강제로 집을 떠난 현실
늘기만 하던 난민 수, 증가세 주춤했지만…
대한민국 인구의 2.4배, 1억 2,200만 명이 강제로 집을 떠난 현실

지난 2025년 6월 20일, 또다시 세계 난민의 날(World Refugee Day)을 맞이했다. 2000년 유엔총회 결의로 공식 제정된 이 날은 매년 전 세계가 난민과 강제실향민들의 삶과 고통, 그리고 그들의 회복탄력성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올해 역시 발표된 통계는 단순한 기념을 넘어, 인류 공동체 전체가 짊어져야 할 심각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공개한 『글로벌 동향 보고서 2024』에 따르면, 2025년 4월 기준 세계 강제실향 인구는 약 1억 2,200만 명에 달한다. 이는 서울 인구의 12배,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약 2.4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전 세계 8명 중 1명꼴로 강제로 집을 떠나야 하는 셈이며, 이는 단순한 통계 수치를 넘어 지구촌의 양심을 무겁게 흔드는 수치다. 놀라운 것은 지난 10여 년간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던 난민 수가 올해 들어 처음으로 증가세가 주춤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결코 안도할 이유가 아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역대 최고 수준의 난민 규모가 이어지고 있으며, 그 귀환의 길조차 위험과 불안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난민 동향: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실향민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곳곳에서 약 1억 2,200만 명이 난민(Refugees), 국내 실향민(IDPs), 망명 신청자(Asylum Seekers), 무국적자(Stateless)로 살아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생명, 가족, 집, 교육, 일자리, 미래를 잃어버린 수많은 얼굴들의 집합이다. 이들 중 가장 큰 비율은 내전과 분쟁으로 집을 떠난 국내 실향민들이다. 전쟁의 포화가 멈추지 않는 아프리카의 수단, 중동의 시리아, 남아시아의 아프가니스탄, 유럽의 우크라이나가 대표적이다. 네 개 나라 출신 실향민만 전체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는 사실은, 국제사회가 특정 지역의 분쟁에 얼마나 무력했는지를 보여주는 통렬한 증거다.
증가세 주춤의 배경: 그러나 아직도 안심할 수 없다
유엔난민기구는 난민 수 증가세가 주춤한 이유로 세 가지 요인을 제시했다. 첫째, 일부 지역에서 귀환이 늘어났다. 시리아에서는 아사드 정권 붕괴 이후 약 50만 명이 고향으로 돌아갔고, 다른 몇몇 국가들에서도 점진적 귀향이 진행됐다. 둘째, 통계 조정이 있었다. 기존 집계 과정에서 중복되거나 누락된 수치가 바로잡히면서 총합에 영향을 미쳤다. 셋째, 최근 몇 년간 발생했던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초대형 분쟁의 신규 발생이 없었다. 그러나 이것이 긍정적 전환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귀환한 난민들의 대부분은 여전히 전쟁의 잔해가 남아 있는 고향에서 물과 전기, 의료와 교육이 부재한 상태로 살아간다. 안전한 귀향이 아닌, 어쩔 수 없는 귀향인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난민의 감소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이동’에 불과하다.
주요 난민 발생국: 수단,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우크라이나
현재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난민 위기를 안고 있는 국가는 수단이다. 내전으로 수도 하르툼이 사실상 폐허가 되면서 수백만 명이 인접국 차드, 남수단, 이집트로 도피했다. 시리아는 이미 10년이 넘는 내전으로 ‘난민의 대명사’가 되었고, 최근 귀환이 늘고 있음에도 여전히 수백만 명이 불안정한 난민 신분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 재집권 이후 여성과 소수민족, 종교 소수자들이 극심한 탄압을 받으며 국외로 탈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또한 유럽에서 수백만 명을 강제실향시키며 21세기 인도주의 위기의 상징이 되었다.
귀환의 명암: 돌아가지만 안전하지 못한 삶
보고서는 2024년 한 해 동안 약 1,000만 명이 고향으로 귀환했다고 밝혔다. 이는 분명 의미 있는 숫자다. 그러나 그 귀환의 환경은 열악하다.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 지뢰가 아직 제거되지 않은 마을, 기본적인 생필품조차 부족한 환경 속에서 이들은 다시 한 번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한다. 결국 귀환이 곧 정상화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에서, 국제사회의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한국대표부의 역할: 세 개의 포럼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는 세 건의 포럼을 연달아 개최했다. 이는 한국 사회가 난민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하지 않고 국제적 책임을 분담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국내 난민 아동·청소년 실태조사 보고회
6월 9일 서울 엔피오피아홀에서 열린 보고회에서는 국내에 거주하는 난민 아동과 청소년들의 교육, 정착, 심리적 건강 문제가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패널 토론에서는 학교 현장에서의 차별, 언어 장벽, 정신건강 문제 등이 생생히 제기되었다.
2025 국내 기술난민제도 도입 정책토론회
6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는 국제사회의 흐름을 반영해 한국에서도 기술난민제도를 도입할 수 있을지를 논의했다. 기술난민은 특정 전문 기술을 보유한 난민들을 새로운 노동시장에 투입함으로써, 단순 보호를 넘어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제도다. 기업, 학계, 지방정부의 다양한 의견은 한국이 단지 난민을 수용하는 수준을 넘어 새로운 길을 개척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분쟁취약국 인도적 지원 포럼
6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이 포럼은 분쟁취약국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SDGs 달성을 주제로 했다. 외교부와 코이카, 국제개발민간협의회(KCOC), 그리고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해 미래를 논의했다. 한국 사회가 국제적 연대에 있어 점점 더 큰 역할을 해야 함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난민 아동과 청소년: 함께 살아갈 우리의 이웃
난민 문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언제나 아동과 청소년이다. 전쟁과 박해 속에서 부모를 잃거나 교육을 받지 못하고, 정체성의 혼란과 정신적 트라우마를 안고 성장한다. 한국에서 진행된 첫 실태조사 결과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더 깊이 이들을 품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그래도 나아가고 싶어요.” 한 난민 아동의 목소리는 단순한 호소가 아니라, 희망을 향한 선언이었다. 교회와 신앙 공동체가 이 아이들을 품는다면, 그들의 상처는 치유될 수 있고 그들의 미래는 새롭게 열릴 수 있다.
교회의 시선: 난민은 짐이 아닌 이웃
성경은 나그네를 환대하라고 끊임없이 명령한다. 아브라함은 이방에서 나그네로 살았고, 예수 그리스도 역시 피난민의 아들로 태어나 이집트로 도피한 경험을 가지셨다. 따라서 난민을 향한 기독교적 응답은 선택이 아니라 사명이다. 교회는 난민을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만 보는 것을 넘어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들이 새로운 사회 속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교육, 일자리, 공동체의 환대가 필요하다.

난민과 함께하는 미래
늘기만 하던 난민 수가 잠시 주춤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전 세계는 사상 최대 규모의 강제실향민 시대를 살고 있다. 귀환은 시작일 뿐, 진정한 해결은 안전과 존엄이 보장되는 삶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최근 보여준 논의와 포럼은 분명 고무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단발성 행사가 아닌, 실제 정책과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교회와 선교공동체 역시 ‘이웃 사랑’이라는 복음의 본질적 사명을 따라 난민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응답해야 한다. 세계 난민의 날은 단순한 국제기념일이 아니라, 인류가 함께 짊어져야 할 부르심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응답할 때, 난민은 더 이상 ‘짐’이 아니라 함께 희망을 일구어가는 이웃이 될 수 있다.
